신영증권·유안타증권, 현대차증권에 “인수 약속 지켜라”
현대차증권 “K-Bond 플랫폼 쓰지 않았으니 확정 아니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ABCP)을 둘러싼 국내 증권사의 대립이 소송전으로 치달았다.

ABCP는 유동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Company, SPC)가 대출채권이나 회사채, 정기예금 등 각종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기업어음(CP)을 의미한다.

신영증권은 23일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금정 제12차 ABCP' 액면 100억원에 대한 매매 계약 이행을 청구하는 소장을 법무법인 태평양을 통해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유안타증권은 이미 지난 6일 법무법인 원을 통해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ABCP 매매 이행 관련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은 현대차증권에 ABCP 물량을 사들이겠다는 ‘합의’를 지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증권 측은 실무자 사이에서 구두로 얘기 된 수준이며, 공식 채널을 거치지 않았기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 ABCP, 왜 문제가 됐을까

국내 증권업계를 흔들고 있는 이번 ABCP는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회사채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5월8일 SPC 금정제12차를 통해 CERCG의 역외 자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ABCP를 발행했다. 규모는 1조5000억달러(약 1646억원)다.

나이스신용평가사는 ABCP에 A2 등급을 부여했다. 주선사인 한화투자증권이 1035억원어치를 가져갔다. 공동인수단으로 참여한 이베스트투자증권은 611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이들은 전량을 기관에 팔았다.

거의 대부분의 ABCP를 국내 증권사가 나눠가졌다. 우선 현대차증권이 600억원어치를 샀다. 신영증권(100억원), 유안타증권(150억원), KTB자산운용(200억원), 골든브릿지자산운용(60억원)도 가져갔다.

신용등급도 높고, 3개월만 투자해도 높은 수준(3%대)의 수익을 볼 수 있다. 달콤한 꿈은 ABCP 발행 20일만인 지난 5월25일 무너졌다.

CERCG의 또 다른 역외 자회사가 발행한 채권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것.

나이스신용평가는 사건 3일만에 ABCP의 신용도를 A2에서 C로 3단계 강등했다. C등급은 상환능력이 의문시되는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가 갖고 있는 ABCP가 곧바로 디폴트 상태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교차부도(cross-default)가 발생, 상품이 휴짓조각으로 변했을 가능성을 놓기는 어렵다.

사건이 터진 후 당장 뭇매를 맞은 건 나이스신용평가와 한화투자증권이다. 통상적으로 신용평가 등급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1개월 새 등급을 3단계나 떨어트렸다는 것은 부실하게 평가한게 아니냐는 논리다.

또한 신용등급 판정 과정에서 CERCG를 ‘지방 공기업’으로 분류한 것도 논란이 됐다. 국유자본이 들어간 것은 맞으나 중국 내에서 공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채권을 유동화한 한화투자증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 회사는 ABCP를 발행하며 실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사와 옛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11년 주관을 맡았던 중국고섬이 상장 두달만에 분식회계 문제로 거래 중지되는 사건이 있었다. 또 2016년에도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로 160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 현대차증권, ‘소송 타깃’ 이유는

ABCP의 부도를 놓고 불거진 논란은 엉뚱하게 국내 증권사간 매매 계약 관행에 대한 신뢰성으로 불거진 모양새다.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은 상품을 구조화한 한화투자증권이 아닌 현대차증권에 소송을 냈다.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에 따르면 부도 위험이 불거지기 전 현대차증권은 이들이 보유한 ABCP 물량을 매수하겠다며 메신저와 전화로 약속했다.

부도 가능성이 불거진 뒤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금융시스템은 신용이 생명”이라며, “이번 현대차증권의 매매계약 결제 불이행 건은 신의성실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 시장의 관례를 깨는 것은 물론, 자본시장 질서를 흔드는 심각한 모럴 헤저드 행위라고 생각하여 불가피하게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화, 메신저 등을 이용한 매매는 시장에서 그간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특정 외국계회사의 메신저를 사용했다. 누가 먼저 해당 메신저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상의 표준이 되어 있던 상황에서 해당사가 갑작스레 국내서 메신저 사업을 접었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 논란이 컸다.

지난해 7월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금융투자협회의 장외채권거래시스템인 케이본드(K-Bond)다.

케이본드는 금투협이 장외채권거래를 ‘도와주기’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2010년 오픈한 프리본드를 손 본 것이다. 케이본드는 현재 금융투자업계에서 대세가 된 상태다. 다만 반드시 이 시스템을 통해 거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장외거래는 여전히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거래합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측은 승리 가능성을 자신한다.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현대증권(현 KB증권)과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가 메신저를 통한 기업어음 예약매매를 했다. 이후 이를 이행하지 않자 소를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메신저를 통한 매매약정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전화, 메신저 등을 이용한 매매를 인정하면서도 “실무자 선에서 구두로 이뤄진 수준”이라며 “금융투자협회의 채권거래 플랫폼인 케이본드를 통해 공식적으로 체결 된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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