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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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군대를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복학생 첫 학기. 군대를 막 전역한 복학생은 같이 놀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나름 전역 이후 철이 든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생활 중 최고 학점은 이때 많이 만들어 진다고 하죠. 저 역시 이 당시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고, 대학 생활 최고의 학점을 받았습니다. 라고 이야기가 흘러가면 좋겠지만, 전 이 시기 최저 학점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버지 직장 최고 복지는 자녀 등록금 지원이었는데 정말 딱 한가지 조건이 있었고 이게 바로 평균 3.0 이상(4.5만점 기준, 평균 B)의 성적표 제출이었습니다. 3.0/B라는 학점은 이런 느낌이었죠. ‘출석을 아예 안한것도 아니고, 공부를 아예 안한것도 아닌데, 공부를 못하는구나.’ ‘성적을 주긴 하겠는데 공부 좀 똑바로 하지?’

출석만 하고, 시험 공부를 하긴하고, 시험을 보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학점이었는데 여튼 저는 2점대 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 최초의 차용증을 작성했고, 취업이 아닌 다른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빚은 2011년이 되어서야 상환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식 돈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차용증을 앞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마음에 선택한 진로가 회계사였고, 아직까지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당시 회계사 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책 제목이 바로 <불합격을 피하는 법>입니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분의 공부 방법 책이었는데 ‘불합격을 피하다 보면 합격한다’라는 말장난 같지만 나름의 의도가 있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열심히 보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이야기 할 주제가 바로 저 책의 제목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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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유치라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스타트업 관련 업무를 하다보면 투자유치와 관련된 이슈나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투자를 잘 받는 방법에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있고,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할까요. 제가 감히 투자를 잘 받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할 능력이나 위치는 되지 않습니다.

다만, 투자유치 과정에서 회계적으로, 재무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즉, 불합격을 피하는 요소들은 몇 가지 소개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험이 1차 시험, 2차 시험, 면접 등으로 단계가 있듯이 투자유치에도 각 단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회계는 투자유치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지만 오늘은 우선 초기 단계의 투자유치라고 생각하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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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투자유치를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은 “하면 안됩니다.”

1)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는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특수관계인이란 배우자, 가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회사 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언가 대표이사 또는 임원진과 경제적으로 연관이 된 주체와의 거래가 있는 회사는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이 마케팅 활동을 위해 영상제작 외주 업체를 활용할 수 있는데, 영상제작 회사의 대표가 장난감 스타트업의 배우자인 경우입니다.

심한 경우는 장난감 리뷰 명목으로 자녀가 있는 본인의 동생 부부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투자금이 대표이사 또는 임원진의 특수관계인에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투자할리 만무합니다.

2) 거래처가 불분명하거나 적격 증빙이 없는 가지급금을 주의해야 합니다.

가지급금이란 회사로부터 현금 지출은 있었으나 그 거래처가 불분명하거나 적격 증빙이 존재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처리해 놓은 계정을 의미합니다.

법인은 대표이사 개인과는 전혀 무관한 법적 실체이기 때문에 모든 자금의 지출에 대해서는 적절한 사유와 분명한 지급처가 존재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고 회사나 대표이사가 원하지 않더라도 가지급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프리랜서나 외국인에게 서비스를 제공 받았는데 상대방이 현금 결제를 원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회사 담당자나 대표이사는 법인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야 하고 이를 통해 수수료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현금 지급분에 대해 세무 신고를 통해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이걸 원하지 않으니 이런 거래가 발생했겠죠.

위와 같은 상황은 너무나 빈번합니다.

이를 회사에서 잘 정리해 적절한 회계처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세무상 불이익은 일부 받겠지만 적어도 가지급금은 쌓지 않고 재무제표를 관리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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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상장주식 가치를 마음대로 산정해 거래하면 결국은 훗날 리스크로 돌아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투자하는 기업의 가치와 과거 거래된 가치를 비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이 주식가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아무런 기준도 없는 주식거래를 여러차례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주식을 액면가 5000원에 팔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동일한 주식을 비슷한 시기에 1만원에 파는 경우입니다.

주식거래라는 것이 당연 개인과 개인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거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문제될 것 없지만, 특수한 상황에 누군가에게 부당한 이득을 주기 위해 주식을 거래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커질수 있고(증여세 등) 이러한 거래가 아무런 기준 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꺼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4) 세무 리스크 관리(특히 부가가치세, 원천세). 많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종종 기업의 세무 관리를 너무 안일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하고 어려운 세금을 일일히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일을 대행하는 업체나 세무회계사무소 등은 수없이 많습니다.

세무 리스크 자체가 투자자의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부가가치세와 원천세 신고는 기업의 기본적인 의무이므로 일정 수준 이상은 잘 관리해서 체납 내역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는 실무적으로 투자 전에 실사를 통해 체납이 발견되는 경우 바로 해결하면 되는 부분이니 너무 걱정할 부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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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도하게 복잡한 거래는 피하는것이 좋습니다.

가장 심플한 거래는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특성상 기존 전통적인 거래구조 보다는 새롭고 독특한 거래 구조가 많기 마련입니다.

이 자체가 나쁜 것은 당연 아닙니다. 그러나 투자자 관점에서 돈의 흐름이 과도하게 복잡하다면 이는 분명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거래방식이 너무 다양하고 거래의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면 결국은 수익 배분이나 매출 인식, 비용 지급 등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Simple is the Best." 이 말은 디자인이나 서비스·제품은 당연하거니와 기업의 거래구조에도 통용되는 문구일 것입니다.

잘해서 딱히 좋을건 없는데, 못하면 불편해 지는 것

회계를 잘하고, 돈 관리를 잘한다고 투자를 잘 받지는 않습니다. 투자자들은 회계를 보고, 돈 관리 방식을 보고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소소한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세요” 수준이죠. 그렇지만 못하면 불편해지는 것은 맞습니다. 특히 위에 이야기한 내용 중 몇몇은 투자 유치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불합격은 일단 피하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쓴이 소개]
김규현 회계법인 마일스톤 부대표(공인회계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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